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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_ [무릉도원 시리즈] 분석과 비평
 제      목 : 무릉도원 1. 2. 3. 4
 재      료 : 한지, 아크릴
 크      기 : 53.0cm x 45.5cm
 제작년도 : 2014

민화 십장생도의 소재로 전개되어 있는 네 컷의 시리즈물은 서양화가인 변선영의 아크릴 화로, 2014년 싱가포르 국제아트페어에 전시되었던 작품들이다. 해당 작품들은 십장생도의 화풍을 따라 학과 사슴, 해와 달, 산과 물, 소나무를 공통적인 주요 소재로 채택하고 있으며, 대부분 선과 면으로 표현되고 있다.
 
산들은 삼각형에서 육각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상으로 하늘을 덮고 있는데, 근접하게는 군청색과 그 밖으로는 백색 태두리로 감싸져 있는 가운데 금색으로 표현되고 있다. 산봉우리들 사이로, 빨간 태양이 그려져 있고 그 가장자리에는 흰 테두리가 넉넉히 씌워져 있는데, 『무릉도원 1』 을 제외한 『무릉도원 2, 3, 4』 작품에서는 군청색 띠가 백색 테두리 안에 일부 포함, 태양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산들 사이로는 하늘을 표현한 군청색이 지면과 맞닿으며 물줄기로 변하고 있으며, 산을 채우고 있는 금색 역시, 그 물줄기 옆으로 길을 만들고,  돌밭을 감싸고 있다. 산과 물을 품은 공간에는 한쪽 공간으로는 사람이 사는 집약적 공간으로 표현되어있는데, 백색과 군청색의 테두리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저 심미적인 이유로 자리 잡은 비구상적 무늬가 아닌, 잘 관리되어있는 논고랑과 밭고랑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지붕과 창문, 마당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지면과 지면사이가 다리로 이어져 있음을 찾아 볼 수 있다.

『무릉도원 1, 4』작품에서는, 캔버스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지면 영역이 순백색으로 처리되어있으며, 장수의 상징으로 알려진 사슴과 학이 그려져 있다. 학과 사슴이 지면을 밟고 있는 경우, 암·수의 한 쌍을 이루어 가까이 노닐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반면, 『무릉도원 2, 3』에 그려진 하늘을 나는 학의 경우, 홀로 유유 적적히 두 다리와 두 날개를 활짝 펴 기류를 타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특히 창공을 가르는 학의 쭉 뻗은 뒷다리나, 지상의 발을 내딛는 학의 날갯짓, 사슴이 뜀박질하는 찰나의 순간을 묘사함으로써, 선과 면의 표현으로 인해 자칫 경직되어 보일 수 있는 평면성에 생동감을 준다. 특히 야생의 학과 사슴이 거처하는 자연인만큼, 두꺼운 한지의 질감역시 평면이 주는 지루함과 한계를 잘 보완해주고 있다.

동일한 작품 시리즈 내에서도『무릉도원 3』의 경우, 이미지 좌측하단으로 파도가 그려져 있는데, 태양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곡선으로 처리된 부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물결이 결코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 파도가 두 마리의 학이 서로 마주보고 물에 발을 담가가며 날갯짓을 하는 동안 생기게 된 물의 잔잔한 파장임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우측 마른땅에는, 이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한 마리가 이들 한 쌍의 학과 합류하고자 하는 날갯짓을 시도하나, 발은 차마 땅을 뜨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어있다.

변선영 작가의 무릉도원 작품 시리즈는, 십장생이라는 동양화의 소재를 채택하면서도, 현대 서양회화작품의 기법이나 원칙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십장생이란, 중국의 신선사상에서 유래하는 10가지의 불로장생의 상징물로, 해와 달, 산과 물, 소나무와 구름, 돌, 거북, 학 사슴을 일컫는데, 작가는 학과 사슴을 선택한 뒤, 이 두 종류의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필요한 대자연의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십장생도의 전체적인 구성을 이루어내며, 각 대상에 적절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자연의 요소를 철저히 선과 면으로 구조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원근법의 원리를 따라 작품 상단에 좁게 표현된 수로를 점차 넓혀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가장 아름다운 한 폭의 전경을 가장 좋은 자리에서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시효과를 선사한다.

면 조각으로 연결된 산들이 길게 이어져있는 가운데, 산을 감싸고 있는 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면으로 연결되다가, 어느새 밭과 소나무 기둥, 징검다리 등으로 바뀌기도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러한 선과 면의 반복되는 호환기법은 단순하게는 판화의 양각/음각 효과를 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원근법칙을 초월하여 동일한 사물의 서로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큐비즘의 변형기법임을 알 수 있다.
 
무릉도원 작품 시리즈가 보여주는 독특한 색채감은 기존 정통 동·서양 회화의 틀을 벗어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서양화가로서의 변선영 작가 본연의 색깔 및 표현방식에서조차 새로이 시도된 것으로, 색채학적으로 서로 연관이 없는 네 가지의 색상(흰색, 군청색, 금색 그리고 소량의 빨간색)을 선택, 자연과 동물과 인간 사회를 구현해내고 있다.
 
작가는 산과 물, 해, 지면 등, 자연의 구성 요소들을 캔버스 전체에 아울러 꽉 차게 구성하고 있으나, 흰색과 군청색을 보색으로 대비시켜, 동양화가 주는 여백의 효과와 무게감을 적절히 조절한다. 한편, 보색으로 활용 된 백색과 군청색의 괴리를 완화시키는데 금색을 선택함으로써, 자칫 지루하고 삭막하게 보일 수 있는 선과 면의 표현에 윤활유를 더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것은, 흰색이 기존의 동양화처럼 여백으로서 남겨지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색격인 군청색위에 덧입혀지기도 하고, 소재와 소재사이를 적극적으로 채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작가가 재료 선택에 있어 동양화의 틀에 얽매이고 있지 않은 까닭이다.
 
변선영 작가는 작품의 주제와 화풍에 맞추어 재료를 선택하는 것에서 과감하게 탈피, 동양화에서 쓰이는 부드러운 한지와 먹을 버리고, 대신 캔버스 위에 두꺼운 한지를 덧대어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하는 것을 시도하였다. 이는 소재와 재료가 주는 동양화의 한계를 초월하고자하는 작가의 의도 및 서양화가로서의 작가 본연의 성향이 잘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변선영 작가는 10호 크기의 캔버스 안에 무릉도원의 각기 다른 전경을 묘사함과 동시에, 4개의 일련의 시리즈물로 구성되어있어 파노라마의 효과를 주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거대한 자연을 하나의 장면으로서 통일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대상의 본질적 특징을 작가 고유의 해석방식으로 형상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작품을 경험하거나 지각하는데 어려움이나 불편함이 없다.
 
태양은 자연을 이루는 한 부분으로서 산봉우리 뒤에 크지 않은 모습으로 겸손히 위치하고 있으나,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거대한 그것의 존재는 인디고블루로 표현된 천상과 지면에 대비, 강렬한 색채감으로 잘 표현되고 있다. 특히, 무릉도원 시리즈가 동양화에서 빌려온 소재임을 상기시켜 볼 때, 작품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낙관으로서의 효과를 주기도 하며, 더 나아가 Sun이라는 자신의 호(號)를 따라 작품의 일부로서 존재하고 싶은 작가의 무의식적 염원이 투영되어있다.
 
태양은 낮과 밤의 구분은 물론, 시간의 총체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대자연의 실존하는 요소로서,『무릉도원 2, 3, 4』에서 태양을 일부 감싸고 있는 군청색 띠는, 해가 사라지면 나타나는 달을 의미한다. 작가는 흰색의 띠로 해무리를 표현함과 동시에 산봉우리나 지면에 드리우는 그림자를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어두우나 밝은, 일몰인 듯 일출인 듯, 시간의 흐름을 초월하는 무릉도원의 몽환적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다.
 
변선영 작가는 무릉도원 작품 시리즈 전반에 걸쳐, 선과 면의 변형이 반복되는 교체기법을 고수한다. 선을 따라가다 보면 한 소재에서 또 다른 소재로 오묘하게 이어져 있는데, 자칫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는 선의 비구상적인 표현을, 절제된 색채감으로 관객들의 작품이해를 돕는다. 하늘의 정기는 무게감 있는 인디고I(indigo) 군청색으로 강과 지면, 사람이 일구어놓은 논·밭에까지 닿아 이어지고, 불변과 부요를 상징하는 금색으로 표현된 산의 정기는, 물길을 따라 흐르며 또 다른 산맥으로 이어져 내려갈 것을 캔버스라는 경계를 넘어서까지 상상해볼 수 있다. 『무릉도원 3』산의 정기가 지면을 충만히 감싸고 있음을 느낄 수 있고, 잔잔한 물의 기운이 산의 정기와 맞닿아 무릉도원이라는 구성의 조화로움과 안정감을 충족시킨다.
 
작가는 인적이 없는 대지와 그 대지의 일부이자 주인인 사슴과 학을 백색으로 처리함으로써, 오염되지 아니한, 인간세상과는 구분된 자연의 영역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무릉도원 1, 2, 4』의 경우, 작가는 동물들을 의도적으로 지붕들이 보이는 촌락보다 아래에 위치시켜, 자연과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고 작가가 추구하는 무릉도원의 절경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무릉도원은 작가가 갈망하고 있는 전원적 삶의 방식이다. 땅을 밟고 있는 생명체는 쌍을 이루어 소소한 일상에서의 풍요로움을 택하나, 하늘을 나는 홀로 나르는 학은 화려함 뒤로 가려진 홀로서기의 결단과 외로움을 뿜어낸다.  천공의 기류를 타며 지상의 삶을 초월하는 학의 자유함, 그리고 길들여지지도, 길들일 수도 없는 사슴의 야생성은 작가 자신의 깊은 내면세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 동안 한 가정의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예술인으로서 삶을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작가의 고뇌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무릉도원을 이루는 자연의 구성요소 하나하나에 고유성이 존재하지만, 작가가 구현해 내고자하는 무릉도원은 자연 자체로 하나이며 이는 인간의 흔적마저 포함한다. 각 작품마다 윤곽선을 머금은 소재들이 도형화되어 캔버스 전체에 얽히고 설켜있지만, 굳이 무엇이 산이고 어디가 물인지 찾아낼 필요는 없다. 전체의 합(合)속 에서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무릉도원에 존재하는 대상들이 각기 그 형태를 명확하게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화면 전체가 주는 인상이 더욱 강한데, 특히 군청색과 순백색의 대비는 마치 사진의 흑백 네게티브 필름을 연상시키며, 실제 전경과 자연이 주는 색감에 대하여 상상을 불어 일으킨다.

변선영 작가의 무릉도원 시리즈는 자연의 방대하고도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지만, 어느 한 특정 소재에 주의를 집중시키지 않는 소박한 풍경화이다. 작가는 명암이나 그림자 처리를 배제하면서도 작가 특유의 구성미를 가지고 평면에 깊이감을 조성해낸다. 특히 작품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공간에 대한 해석과 배분 능력은, 소실점을 마련하지 않아도 원근을 존재하게 함으로써 선과 면이 가지는 평면성의 한계를 노련하게 극복하고 있으며, 공간감의 차원을 넘어서는 세련미를 보여준다. 
 
작가에게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심미적 차원으로서의 선과 면의 활용은 없다. 작가는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 즉, 산과 나무들, 하늘과 지면, 강, 밭과 촌락 등의 특징을 단순화하고 평면의 이미지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서정적 안정감을 전달하고 있으며, 관객들로 하여금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그야말로 무릉도원의 장을 마련해주고 있다.
 
변선영 작가는 복잡한 선과 면의 혼용을 반복 감행하면서도 자신의 정연한 조형적 논리를 따라 그 분위기를 정적으로 풀어낸다. 그러나 결코 고요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작가의 거침없는 선의 표현력이 절제된 색채감과 어우러져 강한 호소력으로 발산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작품관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화면의 구석구석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게 하는 재미를 더하고 있으며, 절제된 색채미를 통하여 어렵지 않게 작품을 해석해 낼 수 있다.
 
무릉도원 시리즈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작가의 헌사가 단 몇 가지의 색채로 구현되어있다. 형태와 조합 된 색채는 화면을 구성하는데 있어 시각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자연 자체가 주는 무게감과 더불어 장엄하기까지 하다. 특히 각 색채 요소가 발현하는 강렬한 에너지는 자연이 생명력 자체로서 가지는 아름다움을 선포하는 작가의 심리적 표현이라 하겠다.
 
무릉도원 시리즈에 드러나는 작가의 미적 감수성은 실로 독특하다. 서양화의 재료를 가지고 동양화풍의 모티브를 그려내고 있다. 또 풍경화로서 화면의 디테일을 충실히 묘사하기보다는 풍경이 주는 시각적 인상자체를 크로키 기법으로 포착해낸다. 비어있는 평면과 즐비한 선들이 주는 가벼움을 색채로 보완 처리함으로써 작품의 균형감을 조성해낸다. 관객들은 무릉도원이 선사해주는 서정적인 감흥을 서양화나 동양화로 규정지을 수 없기에 작품에 더욱 매료된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이러한 작가의 독창적인 화풍이 앞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획을 긋는 새로운 시류로 굳건히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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