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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_김성호(미술평론가), 2016_익숙한 우연, 우연의 동행 그리고 비대칭적 만남의 관계학
I. 프롤로그

변선영은 지금까지 지속적인 매체 실험을 통해서 자신의 다양한 조형 언어를 선보여 왔다. 이러는 가운데에서도 그녀가 일관되게 선보여 온 것은 ‘동행’이라는 주제 의식이다. 평면 회화에서도, 3차원 입체에서도 그리고 2차원 평면 위의 부조 작업에서도 이 주제는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자매, 동료, 친구, 남녀 한 쌍 등 2인 또는 2인 이상을 줄곧 화면에 등장시켜 온 것을 보더라도 작품 창작에 있어서 그녀가 얼마나 타자와의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타자와의 관계의 주요성은 최근작의 주제와 제명으로 사용되고 있는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서-동행’에서 충분히 유추된다. 한마디로 그녀의 작업은 변선영이라는 예술가 주체가 또 다른 예술가 또는 타자들을 만나 자신의 ‘잃어버린 자아’(또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자아)를 존재의 차원에서 되찾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하겠다.
 
II. 사물의 의인화와 오브제 미학

최근 그녀의 부조형 패널 작품에 사용된 나무들은 모두 오브제이다. 그것은 공예 공방에서 사용하고 버려진 자투리 나무 조각이 작품의 재료로 선택, 도입된 ‘발견된 오브제(objets trouvés)’이다. 작가에 의해 선택된 이것은 자르고, 조각내고, 구멍 뚫고, 상처내고, 화면에 붙이면서 원래의 오브제 특성이 변조된 ‘만들어진 오브제(objets créés)’이기도 하다.

오브제(objet)란 무엇인가? '오브제'라는 불어의 미술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일반적 개념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 의미가 부여된 물체’를 뜻한다. 즉 ‘미술이 된 사물’인 것이다. 동시대에 이르러 오브제 미술은, 앤디워홀이 만든 가짜 공산품, <브릴로 박스>의 경우처럼,  ‘가짜 오브제 미술’이라는 전략들로 인해 ‘원본으로서의 시뮬라크르(simulacre)’처럼 현대성과 관련한 ‘골치 아픈 미학’을 배태하면서 변모해 왔다.
그럼에도 오브제 미술은 여전히 창작자들에게는 자유로운 사유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로 또는 그것을 위한 최적의 매체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20세기에 이르러 피카소의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 작업이나 뒤샹의 레디메이드(ready-made) 작업을 필두로 유행처럼 번진 콜라주, 오브제, 앗상블라주와 같은 오브제 미술은 재현의 대안, 전위의 상징, 반미학과 같은 모토 아래 기존 미술이 당면했던 표현의 경직성을 넘어서며 비주얼 아트의 주요전략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는 오늘날 비주얼 아트에서, 오브제미술이란 창작 주체의 사유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기에 제격이다.

인테리어 공사장에서 ‘발견된 오브제들’은 작가 변선영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오브제들’로 변신한다. 그녀의 오브제 미술은 3차원 입체의 오브제들이 조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부분 앗상블라주(assemblage)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평면의 틀 속에 부착되는 형식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2차원적 경향을 띠고 있는 콜라주(collage)의 전략을 따르고 있다. 피카소가 신문과 잡지 조각을 화면에 오려붙여 촉발시킨 이 콜라주 전략은 실제의 악보를 콜라주함으로써 그 재현 이미지를 대신하는 방식으로 출발되었듯이, 작가 변선영의 오브제 또한 재현의 이미지를 대신한다. 작가 변선영은 이 오브제들을 마치 회화처럼 사용한다. 즉 그리기의 차원으로 이 오브제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화면 위에 올라선 오브제들은 그녀에게 과거 속 자신이거나 추억 속의 그/그녀처럼 특정의 인물을 대신하거나 또는 구체적으로 그 누구로 적시할 수 없는 자신의 이웃 중 그 누구가 될 수도 있고 신화와 동화 속 불특정한 인물이 되기도 한다. 보라! 조각목들이 종(縱)으로 쌓여 마치 허리를 곧추 세우고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연인이 되거나, 조각목이 방사형의 부채처럼 펼쳐지면서 왕관을 쓴 남자와 치마를 입은 여인으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마치 척추처럼 휘어진 조각목들은 등을 맞대고 서 있는 두 사람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나무 조각, 끈, 밧줄과 같은 비교적 단순 명쾌한 오브제들은 그녀의 전시 주제인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서-동행’ 안으로 들어와 변선영이라는 한 창작 주체의 내밀한 사유와 감정을 표현하는 매체들로 자리 잡는다. 그녀에게 이 오브제들은 주제 동행을 실현시키려는 듯이, 삶의 목표점을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따라서 오브제에 운동성을 부여해서 생명체로 둔갑시키는 활유법(活喩法)에 비해 변선영이 구사하는 의인화 혹은 의인법은 오브제에 감정과 정서를 실어냄으로써 그것을 인격의 주체로 부상시킨다. 즉 한낱 사물일 따름인 오브제를 마치 동화 속 신비한 공주로 또는 친밀한 내 가족의 일원으로 변화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오브제 미학’ 즉 ‘사물의 의인화’ 전략이 성취하는 지점이다.

III. 익숙한 우연과 만남의 관계 지형

작가 변선영에게 있어 오브제를 회화처럼 사용하는 방식, 즉 그리기의 차원으로 사용하는 방식은 오브제의 원래 특성과 위치로부터 오브제 자신을 탈각시키고 우연의 이미지로 변환시킨다. 우연의 이미지는 오브제의 콜라주와 데페이즈망(dépaysement) 전략으로 인해 뜻하지 아니하게 생산된다. ‘콜라주’란 시공간이 다른 곳의 사물과 이미지의 존재를 한 공간에 다시 모아내는 ‘해체’와 ‘재조합’이며, ‘데페이즈망’이란 일상적 관계의 공간으로부터 사물을 추방하여 예술의 낯선 장소에 불러오는 ‘장소전이(場所轉移)’이다. 특히 데페이즈망은 뒤샹의 ‘부엌 의자와 자전거 바퀴의 만남’처럼 일상적인 관계에 있는 사물을 추방하여 예술의 장소에 낯선 관계로 다시 불러들임으로써 우연적이고 초현실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변선영에게 있어 콜라주와 데페이즈망의 조형 언어들은 '연계되지 않은 것들의 우연한 만남'을 끊임없이 주선한다. 단지 초현실주의의 전략과 다르다면 ‘낯선 우연’이기보다 오브제의 조합으로 예측되는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익숙한 우연’이라는 점이다.

나무 패널과 한지, 한지 위의 패턴 문양, 목공예의 부산물인 조각목들, 조각목의 콜라주, 끈 혹은 로프의 개입, 유추되는 사람의 이미지, 두 개체 혹은 두 사람의 병렬적 조화와 대립적 균형. 대칭과 비대칭 등이 그것이다. 각기 다른 용도와 기능적 목적 아래 생산되었던 목공예 부산물들은 그녀의 창작에 이합집산하면서 모여 들어 우연한 만남(들)을 창출한다. 그 우연이 우리에게 익숙한 까닭은 수고스러운 노동과 더불어 꼼꼼한 창작 계획 그리고 지난한 창작 과정들을 거치면서 우연한 만남 자체를 매우 세밀하고 정교하게 다듬어 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면서 작품 이미지는 외려 단순해지면서 상징적인 조형의 정수(精髓)만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그렇다. 변선영의 콜라주와 데페이즈망의 결과는 분명 우연의 것이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마치 우연과 비연동만이 지속되는 우리의 인생의 내러티브와 같은 것이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인생에서 부지불식중에 지나치는 무수한 사람들과(혹은 사건들과)의 우연한 만남을 지속한다. 그것은 우연의 연속이지만, 우리는 놀라지 않는다. 바로 익숙한 우연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만남의 관계 지형은 이처럼 우연과 항상 동행한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인생의 내러티브(narrative)는 레시(récit)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서론, 본론, 결론 식의 논술의 구조를 탈주하고 무수한 우연한 사건 속에서 필연을 찾아 움직이는 소설의 언어와 같은 것이다. 어떤 차원에서 그것은 주절거리는 1인칭 화자의 독백, 회고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남의 관계 지형은 다분히 타자(他者)의 정치학이자 타자와의 상호작용이다. 그것은 우연을 동반하는데, 이 중에서 몇몇의 우연적 만남은 필연으로 인식된다. 작가 변선영에게서도 다르지 않다. 그녀는 누군가와 “저기요, 여보세요, 아주머니!”와 같은 불특정의 호칭으로 우연의 만남을 가지기도 하지만,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로 명명되며 특별한 이들과의 필연적 만남을 갖기도 한다.
작가 변선영의 작품은 이처럼 우연으로부터 발화(發話)해서 필연으로 이주하는 만남의 관계 지형을 탐구한다. 목조각 모듈들은 각기 다른 고향으로부터 그녀의 작품 안으로 우연의 만남을 형성하며 이주해 왔지만, 그것은 이내 작가에 의해서 필연적인 만남으로의 관계 회복에 나선다. 작품 속 한 인물의 다리와 팔로 조합된 우연한 만남이 이제는 작품 속 한 주체가 되는 필연적 만남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때로는 자매의 형상으로, 친구의 형상으로, 그리고 부부의 형상으로, 우연으로부터 필연으로 이주하는 타자와의 만남으로서 말이다.

이렇듯 ‘우연으로부터 필연으로’의 만남의 관계를 탐구하는 그녀의 작업은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라는 ‘타자로부터 명명되어진 이름’으로부터 비로소 탈주하면서 잃어버린 자신의 이름 ‘변선영’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물론 만남의 관계에서 ‘잃어버렸던 자아’를 또 다른 만남의 관계로 다시 찾는 일이기도 하다. 나아가 그것은 나를 나로 인식하게 만드는 외부의 타자들을 끊임없이 인식하는 길이기도 하다.

IV. 대칭 속 비대칭 

작가 변선영의 ‘잃어버린 자아 찾기’는 거울을 대면하고 있는 듯한 작품의 대칭 이미지를 통해서 문제시된다. 거울 속 반영 이미지는 분명 나라는 실재가 아니지만, 나의 분신으로 간주된다. 그것은 시뮬라크르(simulacre)라는 모조의 세계이지만, 보드리야르에게 있어 그것은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대체적 존재이며, 들뢰즈에게 있어 그것은 세상의 운동적 질서를 창출하는 역동적 존재가 된다. 그리고 작가 변선영에게 있어 그것은 ‘내 안의 또 다른 나’이자 ‘보이지 않는 내면의 나’ 그리고 ‘낯선 나’라는 존재이다. 
 
 “이번 ‘동행’ 시리즈 작품은 나와 또 다른 내 안의 나를 표현하여 보이는 모습과 보이지 않는 내면의 내 모습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였다. 이는 거울에 비춰진 또 다른 나의 낯선 모습. 두 가지의 모습이 모두 실재이면서도 모두 허상 같은 낯선 내 존재의 모습, 혼란 속에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자 함이다.”
그렇다. “마주 보고 있거나 반대편 같은 형태로의 구성은 상상으로서의 또 다른 나”를 표현하는 것이며, “결핍되어 있는 자아를 충족시키려 한다는 의도적 표현 배치”이기도 하다. 아울러 그것은 ‘나’와 대면하고 동행하고 있는 ‘타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변선영이 다음과 같은 언급, 즉 “보이는 나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나로 표현한 것은 외로움을 탈피하고 누구인가와는 늘 함께 동행하고 싶은 소망적 나의 표현이다”라는 발언이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따라서 작품 속 2인의 대칭적 모습은 나의 다중적 자아의 모습이기도 하면서 나와 타자의 대화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작가는 이러한 대칭의 세계에 미세하게 다른 비대칭을 소환한다. 하나의 형상의 위아래를 뒤집은 형상이 병렬 배치되면서 미세하게 대칭을 균열시키거나 좌우의 대칭적 구조를 흩뜨리는 비대칭이 자리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에는 두 개의 패널이 한 쌍이 되거나 하나의 패널 안에 여러 쌍의 대칭과 비대칭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그녀의 작품이 시메트리(symmetry)와 에이시메트리(asymmetry), 즉 대칭과 비대칭으로 정리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대칭이 근간이 된 상태에서 비대칭이 개입하는 것이지만, 그 시각적 효과는 ‘비대칭적 조화’로부터 창출되는 것이다. 그것은 나와 타자의 만남이자, 나와 또 다른 나와의 만남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또한 대칭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비대칭이 호흡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이처럼 작품의 외견상 명확한 대칭 구조가 잃기 쉬운 역동과 생명력은 비대칭으로 비로소 극복될 수 있다.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 김종영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변선영의 작품에 나타난 대칭과 비대칭을 이해하는 하나의 화두가 된다. “나의 작품의 유기적인 구조와 더욱 효과적인 입체를 위해서 대칭(Symmetry)를 깨뜨리기에 힘쓴다. 대칭은 작품을 평면화시키고 운동성과 입체의 생기를 읽게 한다. 생명의 동적인 상태는 항상 비대칭성(Asymmetry)이다.” 이러한 비대칭과 관련한 예술관은 근대 미학자 고유섭(高裕燮)이 정의했던 ‘비정형성, 비균제성, 무기교의 기교’라는 한국미술의 특성과 예술 가치마저 계승하지 않든가?

변선영의 작품은 비대칭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대칭에 근간한 비대칭의 절묘함을 조형언어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특히 최근의 정형화된 시메트리 작업속에서도 이러한 에이시메트리의 미세한 변화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예술의 인위 속에서 순수함의 미학을 지속적으로 찾는 일이다. 마치 그녀 작업에서 목조각들이 자연 자체의 나무색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V. 에필로그

변선영은 이전의 유화, 한국화, 파스텔, 아크릴 등의 다양한 미술실험을 통해서 회화의 확장을 실험해 왔다. 이런 영향으로 그녀는 최근의 부조적 평면 작업에서 조각의 언어를 회화적 감성과 공예적 노동으로 선보인다. 그녀는 이 작품들에서 우연으로부터 필연적인 만남으로 변주하는 일상의 만남의 관계학을 진지하게 탐구했다. 특히 오브제들의 조합을 복잡다기한 인간 주체들의 관계의 문제로 설정하거나 이윽고 혼돈스러운 인간 주체의 내면의 모습으로까지 표상화시킨 것이다. 즉 자아와 또 다른 자아, 주체와 타자의 문제로 탐구한 것이다.  

보라! 거꾸로 등을 대고 있는 있는 ‘나와 또 다른 나’를 그리고 ‘나와 타자의 모습’을. 축배를 들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말이다. 우리는 그녀의 최근 작품들에서 과거를 반추하고 삶을 성찰하는 그녀의 시각적 일기를 대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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